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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자들의 국가

책 나눔

by 조사 이재호 2021. 11. 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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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달프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 어린 생명들...그들의 부모와 가족들은 어쩌라고.
권력을 심판하기 위해 하신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대가가 너무 크다.
그리고 심판은 어찌된거지?

 

그날 나는 오전에 TV를 보고 있었다. '전원구조'라는 굵은 글씨에 가슴 철렁했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뭔가 문제가 생긴 듯 보였다. 내 기억에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전원구조가 수백명 실종으로 바뀌면서 몇 일이 지나도 생존자는 늘어나지 않았고 몇 달이 지나도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제한된 정보, 그러니까 권력자들에게 알려져야만 하는 사실들만 드러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답답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권력을 지켜야만 하는 자들 앞에서는 사람 목숨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 책은 세월호 사건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가진 많은 분들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각자 다른 관점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썼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슷했다. 그 날, 일어난 일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며,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근무태만이었다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배우고 나름의 준비하는 것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헌신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얻은 권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섬겨야 함에도 처음 먹었던 마음과는 다르게 누군가를 짓밟고 조종하고 통제하는데에 앞장서는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권력은 그런 것인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필요악.

 

우리 집안의 막내 삼촌. 막둥이 삼촌이라고 불렸던 그 분은 아버지의 형제들 중에서 학력이 가장 좋았고 실제로도 똑똑하셨다고 했다. 삼촌은 30년간 환경단체의 간부로 환경운동을 해오던차 대기업의 개발을 막으려 인천의 작은 섬에서 환경관련 탐사를 하던 중 돌아가셨다. 신문기사는 '사고사'라고 했다.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개인, 환경단체가 의혹을 제기하고 진실을 파헤치기에는 대기업은 애초에 싸움상대가 되지 못했다. 우리 가족친지들은 그 후로 삼촌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당연히 그 날의 진실도 알 수 없었다. 남은 숙모와 세 자녀들이 지어져야 할 삶의 무게만 버거워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은 곧 힘이다. '갑'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도 뭐 하나라도 의미있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힘으로 그동안 억울하게 당해왔던 모든 울분을 쏟아 놓기라도 하는 것 처럼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모든 사람, 단체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과 단체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의 작은 행동과 말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국가가, 대통령이 국민을 외면하고 진실을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것 같아 보였다. 그런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이 슬프기도 했지만 부끄러웠다. 

 

'사람이 먼저다'

몇 년전 쯤인가. 새로운 정부가 새워진 뒤, 청와대 관람을 가서 기념품으로 받은 컵에 크게 새겨져 있던 글씨였다. 우리가 만약 저 말을 가슴에 담고 무슨 일을 한다면 지금 보다는 훨씬 공정하고 상식적인 세상이 될 수 있겠다. 가진 자들에 대한 날이 선 비판을 거두고 나에게 질문해보았다. 내가 힘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실수했을 때 사과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할 수 있을까? 위기의 상황에 나와 내 가족, 내 편이 아닌 다수를 위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지!라고는 다짐 할 수 있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시작이 좋았다고 끝도 항상 같지는 않으니까.

 

단원고 희생자 고 이창현 군 엄마 최순화 씨는 더디기만 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삶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2021년 10월, 오늘 여기까지 살아온 저의 삶에서 내려진 결론은 이렇습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을 살아 내는 것,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 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 삶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희는 살아 낼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호 진상 규명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이 삶을 기꺼이 살아 내겠습니다. 이 길에 다행히도 천사와 같은 많은 분의 동행이 있어 덜 외롭고 덜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셨고 앞으로도 함께해 주실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몇주 전, 만났던 '그냥, 사람'이라는 책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적 약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된 이들을 위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잊지 않고 계속 이야기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언제까지 이 힘겨운 싸움을 계속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밝혀지지 않을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그 사람 때문에 무언가가 변화되고 움직여지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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