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를 묘사한 공상과학 영화를 보았던 어린 시절에는 먼 미래로 여겨졌고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공대생이 아닌 나는 IT에 대해 잘 모른다. 때문에 IT에 관련된 대화 주제에 잘 끼어들지 않았고 물론 관련 책도 보지 않았다. 복잡하고 어렵고 나와는 다른 세계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공모전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보지 않았을 테고 어쩌면 영원히 ‘포스트휴먼’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고민을 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대안학교의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세 자녀의 부모로서 아이들을 키우며 다음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기술이야 지금보다 더 발전해서 편리한 세상이 되겠지만 아무래도 환경이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녹아내리는 빙하, 잦은 기상이변, 신종바이러스와 각종 질병. 현상은 제각각이지만 원인은 따지고 보면 하나로 정리되지 않나 싶다. ‘사람’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빠르고 편리하게, 더 나아가서는 인류 공동체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목하에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용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다고 하는 일들이 오히려 인간이 사는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최근 필자가 몸담은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산책하러 나갔다가 길에서 방황하던 강아지 한 마리를 학교로 데리고 왔다. 강아지가 스스로 따라 왔는지 안아서 데리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재롱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과 인정이 아주 고팠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3일 동안 계속 학교 주변에만 있던 강아지를 더 좋은 곳에서 치료받으며 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유기견 보호센터로 연락하여 보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 그 보호센터라는 곳이 세심하게 잘 돌봐준다기보다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데리고 있다가 병에 걸려 죽거나 안락사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기는 데려갔던 센터의 차량에 보니 수많은 버려진 개들이 실려 있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보았다. 호기심과 섣부른 사랑에 강아지를 입양하고 키우다 힘들고 어려우면 버린다. 일 년에 세 번씩 임신과 출산 할 수 있는 강아지들의 개체 수를 늘려 그것으로 장사하는 사람들로 인해 버려진 강아지들은 점점 더 많아진다. 반려견과 반려묘 등 애완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정말 많아져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동물을 학대하고 생명을 가치 있게 돌보지 못하는 장면들도 상당하다. 식용으로, 단지 생산적인 목적으로만 소, 돼지, 닭 같은 동물들을 사육하고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 것들은 처분하는 그늘이 그것이다.
로봇의 등장 또한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다. 우리들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발명품들은 실제로 삶의 속도를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해 주었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지만 아날로그를 경험했던 나로서는 리모트 컨트롤(remote control)은 엄청난 변화였다. 내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버튼 하나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편리함과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자동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왔다. 인터넷과 웹의 구조를 설계한 팀 버너스리는 현재의 무질서한 사이버 세계를 볼 때 애초에 소유권을 가지고 사이버 공간을 자유와 이상의 공간으로만 활용할 수 있도록 통제해야만 했다고 개탄하지 않았을까. 선한 목적을 가지고 웹을 만든이도 인간이고 이 공간을 활용하여 알고리즘과 가짜뉴스로 인간을 통제하려 한 이도 인간이다. 인공지능에 프로그램을 입히고 조종하는 자도 사람이고 그 인공지능에 영향을 받고 잠식당하고 있는 자도 또한 사람이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AI를 원하는가?
나는 흔히 말하는 ‘자녀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 하지 않은 신혼이 얼마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 첫째가 생겼다. 첫째가 세상에 나온 뒤, 12개월이 지나 둘째, 그리고 그 뒤 18개월이 지나 셋째가 태어났다. 뭐가 그리 급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진행이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재정이나 경력 같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하여 계획을 조금 더 치밀하게 세웠다면 내가 세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겠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불임부부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때로는 오히려 불행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시험관시술과 같은 난임 시술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성공들은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게 했다. 가장 좋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태어나는 슈퍼 베이비? 기술만 뒷받침이 되면 마음 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치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들이 과연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오히려 사회를 갈라놓고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까.
작년 12월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20여 년간 크고 작은 질병으로 고통을 겪으셨다. 이 땅에서의 삶이 너무 힘드셨는지 위급한 순간에 심폐소생술 등의 생명 연장을 위한 조치를 하지 않는 데 동의하셨다. 며칠 전까지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셨는데 더는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이 세계가 자연의 법칙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듯이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인간도 주어진 대로, 때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소설에서는 주인공 한아와 외계인과의 러브스토리가 나온다. 평소 무뚝뚝하고 챙겨주지도 않는 무심한 남자친구 경민이 유성우를 본다며 캐나다로 떠났다 돌아오더니니 뭔 일인지 친근하게 얘기하고 요리도 해주며 사근사근해졌는데 알고 보니 외계인이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것이 관계다. 그래서 관계로 인해 상처도 많이 주고받게 된다. 이 고되고 힘겨운 일을 하고 싶지 않아 ‘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에게는 함께 하고픈 관계의 욕구를 없앨 수는 없는 일. 여기서 관계의 대상이 로봇이 될 수 있겠냐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준 것은 맞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느 정도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수록 우리가 감내해야 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 또한 맞닥뜨리게 될 것이 뻔하다. 인간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있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감정의 교류, 상황에 따른 다른 대처 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다 한들 사람의 대체물이 될 수는 없다.
인공지능, 대리모 산업의 성장에는 인간의 통제 욕구와 돈이라는 주제가 깊이 틀어박혀 있다. 로봇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지위, 권한, 책임을 주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답을 내는 데 집중하기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같은 보다 근원적이고 중요한 물음에 답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은 살리는 존재이다. 집안 살림을 하는 사람은 자녀와 가정을 살리고, 나라 살림을 하는 사람은 국가와 국민을 살리고, 학교 살림을 하는 사람은 학생과 교사들을 살리면 된다. 각자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해내야 한다. 물론 잘 안 된다. 인간의 원초적인 한계와 시스템의 문제가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도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 살리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면, 즉 제자리에 있지 못한다면 그 자리를 대신 누군가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최첨단의 똑똑한 인공지능, 로봇, 기계를 놓아도 사람만 할까. 우리는 이제 가던 길에서 잠시 멈추어 반추해 보아야 한다. 우리 문제의 해결책을 우리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찾고 있는 것 같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느낌이다. 이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처절하게 반성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 인류가 함께 변화해야 할 문제다. 우리는 더 나아져야 한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어제의 우리’이다. 지방에 있는 대안학교의 한 교장선생님은 항상 말씀하신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다음세대에게 지금 보다는 덜 삭막한,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포스트휴먼이몰려온다#AI#기계가사람을대체하고있다#어디까지#그래도사람이다#사람다워야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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